보통 외출시에만 노래를 듣는 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라던가, 운동을 한다던가 할 때? 리스트를 랜덤으로 설정해놓고 들을 때도 있고, 순차적으로 재생되게끔 설정해서 듣기도 한다. 그러다 우연찮게 어느 노래가 나오면 과거의 특정한 어떤날에 꽂혀져 그때를 회상하곤 하는데 그때 알게된 노래들이 지금에 와서 들으면 당시의 추억에 관해서 감상에 젖게 만든다. 단순히 '추억'이라는 명사로만 단정지을 것이 아니라, 그날의 분위기와 상황, 날씨, 온도, 곁에 누가 있었는지 그 모든 것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몇개만 추려봤다.
1. 장혜진 - 아름다운 날들
난 장혜진이란 가수도 몰랐다. 고1 겨울 짝사랑을 심하게 앓던 때였다. 부모님께서 노래방을 운영하시는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그날도 삼삼오오 몰려가서 노래방에 갔다. 난 내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생각이 안난다. 분명 노래부르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은 있는데. 같이 간 친구 중에 한명은 장혜진의 이 노래를 불렀고 가사며 음이며 전부 내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었다. '난 장혜진이란 가수를 전혀 몰랐는데 이 친구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가수를 알고 있었던 걸까?' 라며 감탄 아닌 감탄도 하곤 했다. 당시 내 기준에 가요음악 프로그램에 얼굴을 많이 비추던 가수는 아니였으니, 비주류라고만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알았지만, 장혜진을 비주류라고 알았던 그때의 나는 참ㅎㅎㅎ) '많이 좋아했던 날, 너무 철이 없던 날, 아무 말도 없이 지켜주던 너.......... 매일 나는 너를 꿈꿔가겠지.' 가사 또한 띵이다. 유행곡들이 아니라 입소문으로 조금조금씩 퍼져 있는 그런 노래를 알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다시 보게 된다. '넌 살짝 다르구나?' 라는 마음으로.
그때 그 짝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났다. 짝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나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2. 요조&에릭 - Nostalgia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하던 때에 누군가의 배경음악으로 처음 접한 듯 하다. 요조라는 여가수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노래는 전혀 몰랐고, 피쳐링을 신화의 에릭이 담당했길래, "에릭이????" 하며 한번 들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후로 내 리스트에 계속 있다. 당시에 미국에 있었을 때였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 미국에 있던 그 당시가 떠올라서 추억에 또 잠기곤 한다. 특정한 어느날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시점의 모든 날들이 주마등처럼 휙 지나가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참 애려온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조, 에릭을 좋아한다기보단 둘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지기도 했고, 당시 요조라는 가수가 다방면에서 꽤 유명했던 걸로 기억한다. 여전히 예쁘시네요.
3. 산이&레이나 - 한여름밤의 꿈
아 이 노래는 세상 관심없던 노래였다고 맹세할 수 있다. 유행이었는지 여기 틀어도 이 노래, 저기 틀어도 저 노래. 당시 2014년이었고 너무 흔하게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니 더 듣기 싫었다고 해야하나. 게다가 뭔가 예쁜 척 하는 목소리도 듣기 싫었다. 어디서 흘러나와도 그리 주의깊게 듣지도 않았다.
그 해 가을에, 동생이랑 유럽여행을 시작했다. 9월말~10월초 오스트리아 빈에 머무르던 때, 한국을 떠난지 2주가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한인민박 사장님들이 노래를 틀어놓으셨는데 그때 마침 <한여름밤의 꿈>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타지에서 그 노래를 들으니 '뭐야? 이 노래가 이리도 몽글몽글했었나?' 싶은 마음 딱 거기까지였다. 이야, 한국에 돌아와서 우연찮게 이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세상에, 빈에 있었을 때의 기억이 모조리, 몽땅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특히 그 한인민박의 분위기. 여자사장님이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셨던건지는 모르겠는데, 이층침대에 하얀 레이스, 하얀 침구류, 하얀 화장대. 누가봐도 그 여성적인 느낌의 방이었다. 그 방이 그렇게 떠오른다.
4. 성시경 - 희재
이 노래는 전체보다 전주 기타소리가 그렇게 일품이다. 하던일도 멈추게 만들고 마냥 멍 때리며 듣게끔 만든다. 영화 <국화꽃 향기>의 OST이고, 책으로 한번 읽고, 영화로 고3때 보고는 후회를 했던 기억만 있다. 당시에 <클래식>이랑 비슷한 시기에 개봉이 되었는데 두개 중 뭘 볼까 하다가 <국화꽃 향기>를 봤고 <클래식>을 봤어야 했다며 친구들에 호소를ㅎㅎ
영화는 아무튼 그러했지만, 배경음악은 어찌 또 나의 가슴을 후벼파는지 역시 추억이랑 얽혀 있으니 그럴수밖에 없겠다는 결론만 나온다. 2009년 3월 말, 썸을 타던 남자아이랑 이 노래에 관해 주고받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 이 노래가 나와서 지금 가던 길 멈추고 듣고있어.'
'어떤 남자가 또 너의 마음을 휘젓길래 후후'
이런류의 대화였는데, 결론은 그 친구랑 만나는 사이가 되긴 됐다. 100일도 못되어서 헤어지긴 했지만. 썸을 타던 시기가 너무나 설레였어서 이 노래가 그리도 나를 휘젓나보다. 헤어지고 나서도 이 전주 부분만 들으면서 그렇게 울었다. 15년이나 지났어도 그 모든 상황들이 눈에 선하니, 지금도 마음이 애리다. 맞다. 첫사랑이었다.
5. Elliott Yamin - Wait For You
2007년에 미국으로 넘어갔다. 건너건너 아는 친척분집에서 이미 동생이 살고 있었고 내가 뒤따른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만 투성이인 미국생활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냐 싶으면서도 사람 마음이 참. 미국에서 살다다보니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과 간식들이 얼마나 많던지 아무 생각않고 먹다가 역시나 살이 퉁퉁 쪄버렸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음악 저 음악을 당시 mp3에 넣어서 집 밖으로 나가 뛰면서 들었는데 그 중에 한 곡이다. 이 당시에 알았던 노래들은 '영어 배우는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알게된 곡들이었고, 이 노래랑 몇몇 노래들은 지금까지도 듣고 있다. 이 노래가 흘러 나오면, 미국의 조용한 주택가 보도블럭에서 구름이 많던 푸른하늘 아래, 귀에 이어폰을 끼고 마주치는 사람들과 "Hello" 라고 인사하며 운동하던 내 자신이 떠오른다.
6. 윤하 - 빗소리 & 마이티 마우스 - 에너지(feat. 선예)
이 두 노래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노래이다. 역시 첫사랑이랑 엮여져 있는데, 후렴곡을 각자의 핸드폰 벨소리로 저장해놓았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전화가 오면 윤하의 <빗소리>라는 곡의 후렴구가 나오고, 내가 전화를 걸면 그의 핸드폰에서는 마이티 마우스의 <에너지>라는 곡의 후렴구가 나오는 방식이다. 이렇게 저장을 해놓으니 진동으로 바꾸지 않은 이상, 하루에도 몇번씩 이 노래들을 듣는 꼴인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가 이 노래들이 나오면 '아, 그때 그랬었지.' 라며 잠시 잠깐 회상하는 정도. 나도 이 노래를 들으면 회상에 젖는데, 상대방도 회상에 젖고는 할까 살짝 궁금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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