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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기록

[단상]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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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들이 더 많았었는데 몇권은 중고서점에 되팔았다.

 
'처음 언제 그의 책을 접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생각을 짧게나마 적어보려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는데, 내가 2000년도 중학교 2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다. 처음 읽은 시점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접한' 시점이다. 당시 22살정도의 사촌언니가 직장의 위치때문에  우리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는데, 책자 한켠에 언니가 읽은 책들이 꽂혀져 있었고, 그 중에 하나가 '상실의 시대'였다. 당시에 사춘기를 겪던 내가 보기에 제목이 꽤나 매력적이었고, 꽤 두꺼워서 더 멋있어 보였다고나 할까. 유치했던 사춘기였다. 읽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왜인지 22살의 언니가 읽는 책은 고작 중딩이었던 내가 읽기에 어려워 보였으므로 제목만 힐끗보고 후루룩 책장을 넘기고, 그게 끝이었다. 
 
이게 내가 처음 '접한'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그러니까 그는 내가 중학교 2학년 시절부터,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핫한 작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20살이 되던 해, 무라카미 하루키 혹은 일본소설에 제대로 빠지기 시작한다. 대학교 입학하고 짧게 연애를 하고 헤어졌던 그때, 지하철로 무료하게 등하교 하지 않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별을 한 뒤의 일본 소설은 나의 마음을 전적으로 동의해주는 그 무엇이었다.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아 그리도 또 한명이 있는데 생각이 안난다. 그 작가들이 나를 참으로 어루만져 주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된 일본 작가들 중 유일하게 하루키만이 손을 점점 적극적으로 뻗어가며 읽은 작가이다. 
일단 흡입력, 가독성이 엄청나다. 술술 읽히는 책들은 수두둑 빽빽이지만 그와는 좀 다른 차원이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흡입력이 작동되는 동시에 손을 못 놓게 만든다. 희한하다. 책의 두께가 두꺼워도 손을 못 놓고, 장장 총 3권의 장편소설이도 손을 못 놓는다. 해리포터 급이다ㅋㅋ. 
신작은 나올 때마다 구매해서 읽었고, 그 전에 발매 했던 책 중에는 오히려 안 읽은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혹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같은 것들. 단편소설은 워낙에 좋아하지 않아서 선택적으로 읽었다. (나는 어느 작가든지 호흡이 꽤 긴 장편소설을 선호한다.)
 
내용은 하나같이 기괴하고, 성(性)적인 묘사가 꼭 포함되어 있고, 요리하는 장면도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남녀의 대화도 하나같이 얼마나 담백한지. 게다가 주인공과 그 외의 사람들은 아는게 많다. 여러 분야에 얇게 많이 아는 사람들도 있고, 한가지 분야에 또 깊게 아는 사람이 있다. 고독도 꽤 그럴듯 하게 즐긴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이런사람들이 아마 내 곁에 있어면 기분이 살짝 묘할 정도다. 다들 ab형같다 ㅎㅎㅎ 
 
이보다 더 많은 장편소설, 단편소설, 에세이집이 있었는데 결혼하고 오면서 몇권은 되팔았다. 단편소설을 좋아하지 않아서 일단 그것들부터 처분하고, 에세이집도 꽤 인상적이었던 것을 제외하고 되팔았다. ('먼 북소리'를 되판 것이 너무 아쉽다.) 장편소설은 아마 '태엽감는 새'를 되판 것 같다. 옛날 판본으로 5권짜리로 되어있었던가. 기억이 안난다. 아! '해변의 카프카'도 되팔았다가 결국 나중에 다시 주문했다. 제일 마음 아픈 때이다. 기꺼이 팔았건만 다시 구입해야 할 때. 심지어 기존책은 얇은 커버였는데 그건 이제 절판되고 양장본으로만 팔고 있었다. 에휴, 아쉬워. 
 
그렇게 완독 한 책장들은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며칠전 '해변의 카프카'를 꺼내서 다시 읽었다. 거의 15년만에 읽는 하루키의 책이었다. 20대에는 너무나 공감이 가던 주인공과 주변인들의 시크함이, 5살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의 내가 다시 읽으니 이렇게 문장들이 애매모호 할 수가. 뭔가 명확히 떨어지는게 없다고 해야하나. 심지어 성(性)적인 묘사는 얼마나 적나라한지 그렇게까지 이 책에서 묘사했어야 했나. 그렇게 묘사하는게 이 책에서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을까. 다시 읽은 이 책은 그저 모호함으로 끝나버렸다. 
 
심지어 작년인가 출간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그 두께부터 나를 설레게 만들었는데 흡입력은 인정한다만, 완독 후 내 느낌은 '?????'. 그저 물음표였다. 역시 애매했던 주제였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공감능력이 현저히 줄어드는가 정말 공감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그저 잘 읽혔다. 기대했던 신간, 그것도 장편이었건만 이제 다시는 하루키의 신작은 기대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대표작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어도 후회감이 밀려올까. 
두려워서 읽지를 못하겠다. 
 
하지만 반갑게도, 하루키의 에세이는 정말 강력추천한다. 말에 위트가 있고, 센스가 있고 그의 바지런함에 또 감탄을 한다. 1년반 전쯤에 읽은 '먼 북소리'는 (아, 역시나 되팔았던 책인데 다시 구매하려고 보니 또 양장판이다. 그놈의 양장, 양장, 양장!!!!!!!)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하루키가 해외 각국의 나라에서 장기체류하며 끄적였던 글을 엮은 것이다. 사람이 정말 센스가 있다. 이런 사람이 어쩜 그렇게 기괴할 만한 소재로 글을 쓰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마도 하루키의 신작이 나오면 제일 먼저 예약주문을 할 것 같다. (장편소설 혹은 에세이만)  알수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문장이 가득한데도 신작이 나오기만을 또다시 학수고대 하다니. 내가 푹 빠져있던 유일한 작가였고, 작품마다 다 독식해버리던 유일한 작가였으며, (참. 나는 한 작가의 작품들을 연달이 읽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렇게 읽다보면 작가의 문장스타일에 질려버려서 다시는 쳐다도 안보기 때문에 보통 한두권 읽고 다음 작가로 넘어가는 편이다.) 마음이 시린걸 알아버린 첫번째 이별의 상처를 다독여준 작가이기도 해서, 그래서 그 추억때문에 하루키를 찾는 사람이 되어버렸나 싶기도 하다.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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