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베를린 쉔네펠트 공항으로 가는 날이다. 이 날 참으로 고생을 했는데 숙소에서 일찍 나온다고 나온것이 그만 출근시간과 겹쳐버려서 전철이 오는 족족 몇 대를 사람들이 꽉 차서 계속 보내야만 했다. 결국 버스를 타고 도착을 했지만 그것도 우여곡절이 있는 것이, 중간쯤에 가서 운행중단이라고 하고 (왜?? 도대체??) 뒤에 오는 같은 버스로 옮겨 타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스템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일은 꼭 이동하는 날이 터지는데, 왜냐하면 캐리어가 있기 때문에 또 모든 신경이 곤두설 수 밖에 없다.
결국 원래 예약했던 기차를 놓치게 되었으나, 다행히 오픈티켓이라서 같은 티켓으로 다음열차를 탈 수 있었다.
공항가기 참~ 힘들다.
런던의 Southend Airport는 저가항공의 비행기들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곳이라 그런지 굉장히 작았다. 짐을 부치고 이지젯을 타고 마침내 런던 상공으로 올라갔다. 막상 또 떠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쉔네펠트 공항에 도착해서는 따로 입국심사는 없고 도장만 찍어주었으며, 대신 EU국가 줄과 그 외의 국가 줄이 따로 구별되어 있었다. 날씨가 맑았건만, 숙소가 있는 전철역에 도착하니 귀신같이 비가 쏟아진다. 그나마 장대비가 아니라 이슬비여서 크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역시 캐리어가 있을 때는 힘들긴 하다. 결국 비를 다 맞고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근처 몰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별일도 아닌 것 같은,별일 같은 일로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동유럽권은 아시아인을 좀처럼 만나기 힘든건지 희한하게 다닐때마다 우리를 한번씩은 힐끔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아마 10년전 일이니, 세상이 조금은 변한 지금 금, 베를린을 다시 방문하면 아마 동양인을 곁눈질로 바라보는 느낌은 덜 할테지만 당시에는 너무 스트레였다. 이상하다. 정말 베를린에서만 그랬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알게모르게 외국인을 만나면 한번은 더 쳐다보는 것이 그들에게도 스트레스 였을까? 겸사겸사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첫째날도 그리 춥더니, 둘째날도 으슬으슬 춥다.
여름같았던 런던에서 가을을 건너뛰고 초겨울같은 베를린으로 온 느낌이다.
독일 베를린의 명소, 1791년에 세워진 평화의 문인 브란덴부르크문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야한다. 보통 브란덴부르크문을 베를린의 첫번째 방문 장소로 손 꼽는 듯 하다. 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확실히 웅장해 보이는 것이 정말 베를린의 모든 곳은 이곳을 통해서 도착할 수 있는 느낌이 든다. 문 기준으로 왼쪽에 인포센터가 있는데 지도를 1유로 주고 구입을 했다. 가지고 온 여행책자가 영 엉터리다. 브란덴부르크문과 전승기념탑은 일직선 상에 위치해 있는데 그 거리가 어마어마 하다. 분명히 여행책자에서는 도보로 3분거리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건 도저히 3분만에 돌파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거리가 꽤 되는 것을 보고 글쓴이에게 베를린은 와봤는지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뚜벅뚜벅 걷다보면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독일 국기도 5~6개가 걸려있어서 중요한 건물이겠거니 했는데 역시나. 건물 위에 있는 돔에는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었다. 룸메이트에게 들었는데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에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영화를 보여줬다고 했는데 굉장히 멋있었다고 했다. 건물 내부는 보안이 상당하겠지만, 광장은 오픈되어 있어서 시민들을 위한 행사를 꽤 하나보다.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은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이 있는데, 독일의 국회의사당은 꽤 시민친화적인 것 같아서 좋아보인다.
계속 걷다보면 전승기념탑이 보인다. 지하터널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곳으로 지나가야만 중심부에 도달할 수 있으며, 주변은 도로이고 전승기념탑을 기준으로 길이 방사형으로 쫙쫙 뻗어있다. 전승기념탑은 19세기 말,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가 전쟁에 이기고 나서 독일의 통일을 기념해서 세운 탑이라고 한다.
구경 후 카이저빌헬름 교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어디서 내려야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이 종점에서 내리면 되서 느긋하게 바깥구경을 하며 지친 다리도 좀 쉬게 했다. 카이저빌헬름 교회는 책에서 본 그대로였다. 세계2차대전 때 폭격으로 인해 교회의 2/3가 무너진 교회의 모습.
각 나라들이 수많은 전쟁을 치뤘겠지만 왜인지 독일이 더 많은 전쟁을 치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 당시 그대로 보존을 해놓아서 그런걸까? 복원은 둘째치고, 전쟁의 상흔을 대놓고 보여준다. 그때를 절대 잊지 말라는 듯이.
베를린 사람들은 지나다니며 이 교회를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나라가 일제시대에 있을 때, 창경궁에 갖가지 동물들을 들여다놓고 창경원이라고 부르던 것 처럼 치욕스러울까? 주권을 빼았긴것과는 다른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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