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읽는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
첫번째는 22살때쯤, 미국에 있을 때 굳이굳이 한국서점을 찾아가서 겨우 찾은 홍신문화사의 '생의 한가운데'를 구입해서 읽었었다. 사실 그때는 루이제 린저보다는 요절해버린 '전혜린'이라는 사람에 더 관심을 가졌던 때였다. 그 분이 이 책을 번역했다고 하길래 미국에서 찾는건 너무 무리이고, 차선책으로 구매한 책이 이 책이다. 너무 푹 빠져있던 때라, 내 영어이름을 니나 Nina 로 바꿔가며 다녔던 기억이 난다.
여담으로,
전혜린이라는 사람을 아는 주변인들을 만나면, 열에 아홉은 꼭 20대 초반에 한번씩 푹 빠져서 그녀의 책이라던가, 번역서를 읽었던데, 20대 언저리에만 느낄 수 있는 그녀만의 무언가가 있는 듯 하다.
아무튼 그때 처음 읽고, 루이제 린저보다는 전혜린의 삶이 더 궁금했었고, 그녀가 머물렀던 독일의 뮌헨을 더더욱이 궁금해 했었다. (그래서 2014년, 유럽여행 중 들른 독일의 뮌헨은 날씨도 날씨였지만 나에게 더 쓸쓸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전혜린의 생의 대한 집착? 광기? 마치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밧줄을 붙잡고 있는 것같은, 삶에 대한 모든 그녀의 문장들이 콕콕 가슴속에 콕콕 박혔었다. 음, 예를 들어, (어디 출처인지는 모르겠다)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렇게 삶에 대해 직설적으로, 날 것으로 말하는데 지금 읽고 또 읽어도 심장이 방방 뛰는 것을, 혈기 왕성하고 반짝반짝 빛나고 또한 방황하는 20대가 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후로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최근에 들어서야 다시 생각났다. 그 쓸쓸함이 그리웠던 것 같다.
뮌헨의 쓸쓸함이었을까, 전혜린의 쓸쓸함이었을까, '삶의 한가운데'라는 책의 쓸쓸함이었을까.
민음사에서 '삶의 한가운데'라고 이름을 내어서 진작에 출판했는데, 두번째는 민음사 전자책으로 읽어보기로 했다.
니나와 니나의 언니, 그리고 니나가 슈타인박사에게서 받은 편지로 전개된다.
요동치는 니나의 삶과 그녀만을 한없이 바라보는 슈타인박사. 니나는 고집이 있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밀어부치며, 또한 강단있는 성격인 것 같으면서도 어떤면에서는 참 무르기도 하다. 슈타인 박사는 생각을 너무 하는 타입이라 읽는 내내 답답했다. '남자라면 박력있게 좀!' 해야 할 부분에서조차 너무 생각이 많다.
나치 정권하에 있으니, 생각이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걸까.
15년이 흐르고 나서야 다시 읽는 '삶의 한가운데'는 처음 읽었을 때보다 그 격한 감동은 없었다. 결혼출산육아를 경험해보니 사람이 현실적으로 변하는가 ㅋㅋㅋ 인물들을 요목조목 따져보는데에만 정신이 팔렸던 듯 하다. 하지만 니나는 여전히 생명력이 왕성하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이고, 주관이 뚜렸했다. 삶을 포기한 듯 싶으면서도 어찌 저리 생명력이 왕성할까.
전혜린과 니나가 자꾸 겹친다. 그때도 지금도.
268.
우리는 영웅이 아니야. 가끔 그럴 뿐이야. 우리 모두는 약간 비겁하고 계산적이고 이기적이지.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어. 내가 그리고 싶은게 바로 이거야. 우리는 착하면서 동시에 약하고, 영웅적이면서 비겁하고, 인색하면서 관대하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밀접하게 서로 붙어 있다는 것, 그리고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한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하도록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말이야.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도 그것을 간단하게 만들려는 게 나는 싫어.
300.
여기에서 니나는 거의 1년을 보냈다. 왜인가?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서? 나의 도움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러나 사실은 '생'이 그녀에게 부과한 모든 과제를 자신이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였다. 이런 망명지와 같은 곳에선 니나는 불행하지 않았을까? 아니, 하나의 난관을 극복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과연 불행할까? 니나는 내가 있는 쪽으로 얼굴을 돌렸지만 나를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얼굴이 금년 들어 더 경직된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이 얼굴에는 헬레네처럼 어떤 실제적인 혹은 가상적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생에서 물러난 사람들이 갖는 날카로운 면모는 보이지 않았다.
339.
나는 불안을 느끼고 빨리 밖으로 나갔어요. 집 뒤에는 정원이었어요. 거기에 나는 달리아와 과꽃을 심은 적이 있었죠. 그들은 꽃을 피우고 있었어요. 그때 나는 생각했어요. 봐라, 저는 중요한 인식의 순간에, 적나라한 진실 앞에서, 도망치고 있다. 다시 들어가라. 노인을 보고 너 자신을 보라. 비록 두렵기는 하겠지만 전혀 해가 안되는 법. 이것도 삶의 일부일 뿐.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한다. 추악한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575.
갑자기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로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내가 의식을 잃기 시작한 때만큼 생을 미치도록 강력하게, 정말 지겨우면서도 멋지다고 느껴본 적이 과거에는 없었어요.
578.
당신은 나와 함께 죽지 못하고 나를 살린 것을 마음 아파하는 거예요.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 그녀의 말을 반박하려 했을 때, 그녀는 말을 막았다. 당신은 사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만큼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생의 의미를 알려고 했어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죠. 만약 의미를 묻게 되면 그 의미는 결코 체험할 수 없게 돼요. 의미에 대해 묻지 않는 자만이 그 의미가 뭔지 알아요. 니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러면서도 슬프게 말했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이 나를 생으로 다시 돌려보내 주었다. 나는 어째서 그랬는지는 설명할 재간이 없다. 나는 갑자기 엄청나게 힘을 얻어 마음의 평정에 이르렀다. 이 여자에게는 도대체 어떤 힘이 있길래, 지치고 절망에 빠진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일으켜세울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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