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 민음사
실로 오랜만에 읽은 <폭풍의 언덕>이다.
이번이 두번째 읽기인데, 첫번째는 아마 20대 중반에 읽었으리라 싶다. 초반에는 일본소설에 한창 빠져있던 때라 유명하다 싶은 작가들 책을 많이 읽었고, 그때를 지나고 나서야 고전이 눈에 들어오더라.
첫번째 읽기는, 크게 감흥이 없던 걸로 기억한다. 브론테 자매 중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이니까, 누구나 아는 고전이니까, 고전 중에 고전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읽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흥미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히스클리프가 너무 광적인것 아닌가? 그와 연관된 가족들은 너무 안타까운데? 이정도.
관계가 또 얼마나 복잡한지 인물관계도를 찾아가며 읽었는데, 읽다보면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사촌간에 결혼해도 되는 문화가 허용이 되었었는지, 여기저기 얽혀있다. 그렇게 가족끼리 결혼하니 2세 또한 그리 건강하지 못한 것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워더링 하이츠]
언쇼 부부
- 힌들리 언쇼
- 캐서린 언쇼
- 히스클리프 (입양아라고 해야하나)
[드러시크로스 저택]
린튼 부부
- 에드거 린튼
- 이사벨라 린튼
힌들리 언쇼 & 프랜시스 결혼 - 아들 헤어튼 언쇼
캐서린 언쇼 & 에드거 린튼 결혼 - 딸 캐시 린튼
이사벨라 린튼 & 히스클리프 결혼 - 아들 린튼 히스클리프
두 집안이 아주 얽히고 설키고 난리 났다. 사실 1세대들의 이야기는 아니고, 2세대와 3세대의 얘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이 많이 헷갈릴수도 있으므로 관계도를 보면서 읽으면 금방 익숙하게 읽힌다. 러시아 고전의 등장인물에 비하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두번째 읽은 2024년 8월 어느날.
책이라는 것이, 그럴때가 있다. 어느순간 갑자기 생각이 나서 '아, 맞아. 책장에 그런 책이 있었지?'라고 떠오르다가 그 생각이 몇날며칠을 따라다닌다. 그리고 어서 그 책을 읽으라고 내 온갖 감정들이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 그렇게 해서 재독한 책이 몇권이 있는데, <폭풍의 언덕>이 그 중에 한 권이다.
틈틈히 읽었다. 아이 유치원에 보내놓고, 혹은 밤에 재워놓고 옆에서 읽었다. 책의 두께가 얇지는 않지만 이정도는 괜찮다. 뭐, 겁에 질리지 않을 정도의 대담함이 생겼다. 생긴지 꽤 오래.
처음 읽었던 20대때보다는 그래도 먼지 한톨만큼이라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너무 악독했던 히스클리프가 오히려 이 책 등장인물 중에서 제일 영리하고 실속 차리는 인물로 보였다. 아니 그렇잖아? 히스클리프는 무슨 이유로든 어쨌든 언쇼어른이 출장 중에 데리고 온 아이이고, 이 아이도 모든 상황이 낯설을텐데, 아들인 힌들리는 괴롭히기만 하지, 하인들도 우습게 보지. 기댈만한 곳은 아껴주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아껴주는 듯한 캐서린 뿐인데?
심지어 성격이 어떤지, 속사정이 어떤지 파악할 만큼 히스클리프랑 가깝게 지낸 것도 아닌데, 외모만 가지고 또 그렇게 곯려대네? 한마디로 첫인상이 구리니까 계속 구리게 보는거지.
이렇게 지낸 소년기, 청년기인데 꼼꼼하게 복수를 하려는 히스클리프, 난 응원한다. (내가 지금 넷플릭스에서 '더 글로리'를 보고 있어서 더 몰입이 되는건가.)
오히려 다른 주인공들이 너무 철딱서니 없이 느껴졌다. 변명들이 너무 많고, 징징거리고, 뭐가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그저 떼만 쓰면 다 되는 줄 알고. 당시 분위기가 그렇다면 나도 이해해야겠다.
이런 캐릭터들 사이에 나름 당돌(?)한 히스클리프가 있으니, 여자아이들은 홀리고, 남자아이들은 경계심을 갖고 난리부르스다.
결론은 익히 알고 있던대로, 상당히 의!외!로 끝나버렸다.
죽음과 동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봄날이 온 것 마냥 에밀리브론테가 서술해놓아서 히스클리프가 더 안타까워보였다. 비열한 행동을 안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성장과정에서 그가 당한 것에 비하면 글쎄.
되게 좋게 꾸며 말하면 캐서린언쇼와 히스클리프의 밀당을 주고받는 절망스런 사랑이야기다.
'독서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3) | 2024.12.03 |
---|---|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 | 2024.09.05 |
빅씨스; 느려도 좋아, 한 걸음이면 충분해 (5) | 2024.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