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 현대문학
그렇다. 또 어리석은 짓을 했다.
결혼 전, 짐을 정리한답시고 책들 몇몇권을 중고서점에 팔았는데 그중에 한권이다. 심지어 이 책은 흥미롭게 읽은 책이 아니라서 처분하는데 큰 미련이 없던 책들중에 하나였다.
이번해 7월에 읽은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 <끝나지 않은 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p.196
온전히 받아들일 기분이 아닐 때 처음 읽고 그 후로 다시는 읽지 못한 온갖 좋은 책을 생각하면 또 몸서리가 쳐진다. 어중간한 감상만 던져주는 책들이라면 딱 한번만 읽어도 된다. 얼마든지 괜찮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p. 207
이번에도 나는 책이 처음에 상정한 독자가 되기까지 성장해야 했고, 책은 그런 나를 내내 기다려주었다.
당시 2016년도에 이 책을 읽은 나는 비비언 고닉의 말대로 이 책이 상정한 독자가 아니었고, 독자가 되기까지 그러니까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장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이 나지 않아서, 이 책을 그저 넘겨버렸다면 역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루키의 글은 그의 글이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책을 덮고 '다시는 읽지 말아야지. 그의 문체에 질렸어.'라고 결심(?)하고는 몇달이 지나 다시 그 특유의 분위기가 생각나는 것이다.
이번 해 초, 그의 다른 에세이 <먼 북소리>를 재독하고 잠시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반년 뒤에 다시 그의 글이 생각난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떠올렸고, 되판것을 후회했으며, 결국에 나는 다시 온라인서점의 문을 두드렸다.
총 12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1979년 문학상을 처음 탄 이래로부터 쭉 글을 쓰고 있는데, 글을 쓰기 위한 작가의 자세, 마음가짐, 소재에 대해여, 문학계에 대한 분위기, 해외로 진출하기 위한 노력, 여러가지로 노력한 소설 기법 등 하루키만의 비밀노트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하루키에게만 해당하는 노하우이다. 이 방법을 그대로 따라하는건 본인 마음이지만, 따라한다고 성공할 수 있다는건 보장을 못한다고 하루키 본인이 말한다.
공감을 제일 많이 하며 읽은 챕터는 역시 소설 기법의 변화가 적힌 9장.
1인칭으로으로 쓰다보면 한계가 느껴지는데, 그 기법을 20년쯤 유지했다고 한다. 심지어 현실의 '나'와 소설속 '나'의 경계선이 흐릿해지며 현실감각도 불명료해지는데 이건 작가 본인도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다 이리저리 타개해 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데 그중에 한권에 출간되었고, 또 반절은 일인칭, 반절은 삼인칭으로 구성해서 쓴 책도 있다. 진작에 읽은 소설책들을 이런 숨겨진 이야기들과 대조해가면서 읽으니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사람 정말 진심이구나' 싶은 대목을 '작가의 후기'에서 발견하게 된다.
p.334
그런데 어쩌다 소설을 쓰기 위한 자질을 마침 약간 갖고 있었고, 행운의 덕도 있었고, 또한 약간 고집스러운(좋게 말하면 일관된) 성품 덕도 있어서 삼심오 년여를 이렇게 직업적인 소설가로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직도 나를 놀라게 한다. 매우 크게 놀란다.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요컨대 그 놀람에 대한 것이고, 그 놀람을 최대한 순수한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강한 마음(아마 의지라고 칭해도 좋으리라)에 대한 것이다. 나의 삼십오 년 동안의 인생은 결국 그 놀람을 지속시키기 위한 간절안 업業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이 든다.
이렇게까지 그는 진실하다.
아 정말 글자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다.
여담이지만,
그의 에세이들을 읽다보면 세상 이렇게 쿨한 작가 없을 것 같다. 동양인이 상당히 개인적이다.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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